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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⑥ 1부 발포를 거부하다
안호재 | 2021-09-08 10:48: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두환과의 만남』

계속해서 안 국장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18일 새벽부터 예상치 못한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공수부대 280명 정도가 조선대에 진주했다고 산수파출소에서 전화 보고가 오고, 서부경찰서에서는 공수부대 320명 정도가 전남대에 진주했다는 전통이 와서 안병하 국장에게 즉시 보고했는데 국장도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최00 전남경찰국 상황실)*25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조금씩 더 분명해졌다. 광주에만 공수부대가 투입된 것이 아니었다. 7공수여단의 다른 2개 대대는 같은 시각 전북대학교와 충남대학교에 각각 배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서울 지역 주요 대학에도 공수부대가 일제히 배치됐다는 사실도 파악됐다.

그 무렵 안병하 국장이 지휘하던 도경은 10·26사태 직후 계엄이 시작되면서부터 전남지역 계엄부대인 31사단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도경에는 31사단에서 파견 나온 통신, 작전 분야 병력이 상주했고, 경찰국에서도 31사단 작전참모실에 군과 연락업무를 맡을 연락관을 파견한 상태였다. 31사단과 도경 상황실은 직통전화가 가설돼 있었다.*26 평소 일상적인 계엄업무는 군과 경찰 사이에 설치된 직통전화와 연락관들을 통해 원활하게 협조가 이뤄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더 분명해질수록 계엄사령부가 어떤 강력한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순간 안 국장의 뇌리를 퍼뜩 스쳐가는 불길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날짜는 분명치 않지만 며칠 전 전남도청에 중앙정보부장 서리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다녀갔다. 전두환의 전남도청 방문은 극비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알지 못했다. 막강한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그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안 국장은 그날 도청에서 전두환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안병하 국장이 학생 동향 등 계엄업무에 대한 보고를 햇다. 전두환이 도청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전 사령관은 안 국장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선배님, 조만간 서울 오시면 저에게 한번 들러주십시오. 드릴 말씀이 좀 있으니...”

짧지만 진지한 말투였다. 그냐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전해왔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0·26 직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 때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했다. 하지만 12·12를 거치면서 경찰 정보계통에서는 전두환이 ‘군의 실세’;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듬해 4월 중순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하면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경찰 정보와 여론에 따르면 전두환은 명실상부한 군의 최고 실권자였다. 그런 사람이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였다. 제안을 그냥 무시해 버리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겉으로만 본다면 안병하는 육사 8기로, 11기 전두환의 선배였다. 안병하의 동기생들은 5·16군사정변 당시 주력군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자 정권의 실세로 자리를 굳혔다. 직책상 높은 자리에 있는 후배 전두환이 안병하에게 깍듯이 인사를 차리는 것은 친근감과 예의바른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 안병하 국장의 느낌은 달랐다고 한다. 전두환은 직속상관이던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지난해 12월 12일 밤 전격 체포한 뒤 실권을 잡았던 인물이 아니던가. 전두환의 제안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큰일을 앞두고 협조를 구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 안병하는 일부러 전두환을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7

*27 미망인 전임순 증언, 2019. 12. “남편(안병하 국장)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왜 남편이 그때 전두환 씨를 만나지 않았을까를 제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는데요. 남편은 누구에게나 사적인 청탁 같은 것을 무척 싫어했거든요. 평소에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면 되는 거지, 뭐 이리저리 승진인사 부탁하고 그런 걸 매우 싫어했어요. 남편의 그런 성격 때문에 그때도 전두환 씨가 ‘한번 찾아오라’고 했던 제안을 그런 (인사) 청탁 같은 게 아닐까 미리 짐작하고 아예 무시해 버렸던 게 아닐까 싶어요.” 필자는 전임순 여사에게서 ‘5·18 이전 전두환의 광주방문’ 사실을 듣는 순간 귀가 번쩍했다. “분명히 전두환 씨가 5·18 직전에 전남도청을 방문했고, 안병하 국장이 전 씨를 만나 그런 이야길 나눴다는 거예요?” “그럼요. 남편은 집에 와서는 평소 바깥일을 말씀하지 않으시는 과묵한 성격인데 그때 그 이야길 저에게 분명히 하셨거든요.” 지금까지 5·18 관련 공식문서 어디에도 그 시기에 전두환의 광주방문 사실은 찾아볼 수 없다. 전두환의 5·18 당시 행적은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다. 만약 그녀의 증언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또 하나의 관심사다. “그런데 5·18을 겪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전두환 씨가 남편을 만나자고 했던 것은 그런 문제였다기보다는 ‘광주사태’와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5·18 직전에 전두환 씨가 전남도청을 방문했다는 사실도 그렇고요. 왜 하필 남편에게 별도로 만나자는 제안을 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해 5월 초, 전두환은 보안사 참모들과 ‘시국수습대책’(검찰은 ‘5·17내란 시나리오’로 보았다)을 세웠다. 이 대책에는 김대중을 ‘내란음모 혐의로 연행’한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김대중이 정권장악을 위해 학생소요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일부러 사회 혼란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두환이 안병하 국장에게 별도로 만나자고 했던 것은 ‘김대중 연행’ 이후 전라도, 특히 광주 사람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전남도청을 방문했을 터이고, 이 자리에서 ‘전남 경찰국장의 시위진압 의지’를 미리 타진하고, 미리 적극적인 진압을 요청하려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다. 이런 추론은 『전두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경찰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과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안부대 요원이나 정보부 요원은 경찰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었다. 경찰이 존재해야만 치안이 유지되고, 치안이 유지되어야만 정보부 요원도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전두환 회고록』, 1권, 383쪽, 2017) 전두환은 처음에는 4·19 때처럼 경찰을 시위진압에 앞장세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병하는 그때 전두환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비상계엄으로 멈춰버린 민주화의 여정』

5월 17일 밤 7공수여단의 배치는 경찰국장 안병하마저도 모르게 극비리에 진행됐다. 이날 밤 상황이 육군본부가 발간한 공식 자료집 「계엄사」에는 다음과 같이 정리돼 있다.*28

● 이처럼 제한된 병력으로 안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고교생 및 노동자와 불량배 등 부화뇌동 분자들이 가세하기 이전에 조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만약 소요가 과열 중에 있을 때에 군을 투입한다면 학생과 군인 공히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전열정비를 위해 소강상태에 있는 5월 17일 주말을 기하여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희생자 발생을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5·17 조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결국 5월 17일 11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난국을 수습하기 위하여 비상계엄 확대를 결의.

무르익어 가던 민주화 여정은 17일 자정에 내려진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멈춰버렸다. 안병하 국장은 군부가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을 직감했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대충 상황이 파악되자 안병하 국장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계엄군이 투입된다니 차라리 잘 됐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경찰력으로만 시위를 막으려면 경찰 부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경찰 대신 군이 앞장선다면 경찰로서는 오히려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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